Foreword: 데릭 드 커코브, 전 매클루언 프로그램 디렉터

Foreword by Prof. Derrick de Kerckhove

Dr. Derrick de Kerckhove

deKerkhove
  • Former Director of the McLuhan Program in Culture & Technology and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Toronto
  • Research Director at the Interdisciplinary Internet Institute (IN3) at The Open University of Catalonia, Barcelona
  • Scientific director of the Rome based monthly Media Duemila
  • Former Professor of Sociology at the the University of Naples Federico II

오가닉 미디어란 무엇인가?

나는 스스로 ‘네트워크 설계자(Network Architect)’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네트워킹 소프트웨어를 구상하고 개발도 했지만, 내가 프로그래밍을 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네트워크를 본질적으로 연결(connection)의 구조물(architecture)로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네트워크를 역동성이 배제된, 순수히 기능적인 기하학 구조물로만 이해하는 한계를 낳았다. 윤지영 박사의 책, 오가닉 미디어는 이 생각을 바꿔 주었다. 건축가 마르코스 노박(Marcos Novak)과 네트워크 디자이너 마테오 시아슬텔라르디(Matteo Ciastellardi)가 ‘네트워크화된 커뮤니케이션(networked communication)’을 다룬 자신들의 저술을 왜 “유동의 건축물(liquid architectures)”이라고 칭했는지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즉 네트워크라는 구조물은 변화무쌍하며(fluid mutability) 예측하기 어려운 성장의 패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오가닉 미디어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은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미디어, 그래서 살아서 진화하는 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살아서 성장하는 유기적인 미디어를 ‘오가닉 미디어(organic media)’로 명명했다. (36쪽)

저자에 따르면, 오가닉 미디어는 생물학적이고 사회적이며 동시에 기술적이다. 다시 말하면, 오가닉 미디어는 모든 네트워크의 융합체로, 목표지향적 활동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여러가지 모양(multiform)을 지니며, 분산되어 있으며, 엇갈려 배열된(trans-configured) 하나의 환경이다.

이 한 권의 책은 미디어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변화시킬 인식론적 도전(epistemological challenge)이다.

나는 오가닉 미디어의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세 단계를 거쳐야 했다.

  1. 이 책은 먼저 살아있고, 성장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했다. 나는 수긍했다.
  2. 하지만, 나는 곧 모순에 부딪혔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전기(electronic) 네트워크의 기술적 면모와 외부성(externality)에 중점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생물학적이지 않으며, 내 몸에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유기적이지 않다.
  3. 하지만 조금 더 깊이 고민해본 결과, 다른 방식으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유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개입(human intervention)과 (기계적인) 전기(electronic) 미디어 간의 연속성(continuity)의 확립이 주는 가치를 깨달았다. 마침내 나는 스스로를 현실과 가상의 네트워크를 오가며 유동적으로 끊임없이, 무한한 증식을 위해 네트워킹(networking)하는 하나의 사회적이고 생물학적인 노드로 인식하게 되었다.

즉, 나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오가닉 미디어의 개념을 통해 달라진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가닉 미디어 그 자체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책 한 권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생물학적 비유가 있다. 저자는 미디어가 인간적, 기술적 관계 속에서(between and across) 번식(proliferations)을 한다는 관점에서 “살아 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살아 있다”는 은유는 살아 있는 것들이 어떤 입증할 수 없는 원리에 의해 활력이 생겼다고 주장하는 활력론(vitalism)의 그것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게다가 이 원리는 생명의 물리적 활동(material manifestation)과도 분리된 관점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기체설은 어떤 기원에 대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히 인간적이고 도리어 논리적인 이야기다. 왜냐하면 생물학적, 사회적, 기술적인 영역을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 영역을 재결합시키는 관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가닉 미디어라는 은유는 과학적 관찰이 아닌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오가닉 미디어의 관점은 기술적 영역에서도 그 가치가 있다. 기술적 영역 또한 본질적으로 인간의 개입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구를 만들고(shape), 이 도구는 다시 우리를 형성한다(We shape our tools, and then our tools shape us.).” (매클루언, McLuhan)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보내는 화면(screen)과 우리의 정신(mind)은 매우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사회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융복합된 환경에서 진화한다. 사회는 결국 무수히 많은 조직체들이 온전히 상호연결된 하나의 환경이며, 이들은 각각 고유의 다양한 의도를 지니고 끝없는 변화와 성장을 거듭한다. 이것이 바로 ‘오가닉’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를 유기체로 해석하는 데서 얻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것은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 전체를 들여다 보고 이해하는 새로운 필터이자 특별한 렌즈이며 하나의 틀이다. 저자는 비저너리(visionary)다. 그녀는 전체 그림을 보며 어떻게 연결과 그룹들이 그 안에서 뿌리(리좀)가 뻗어나가듯이 형성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조망한다. 오가닉 미디어는 연결과 성장의 패턴과 원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들이 어떤 형식으로 형성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함으로써, 저자는 디지털 문화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발생하고 있는지, 현상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 어떻게 최대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혜안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가닉 미디어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은 어떠한가? 먼저, 기본이 되는 통찰을 살펴보자.

오가닉 미디어의 콘텐츠는 살아 있다. 기계적 전송 방식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 미디어 관점에서는 콘텐츠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마지막 단계다. 말을 내뱉는 순간, 또는 출판·발행·방송되는 순간 미디어의 역할은 끝난다. 반면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콘텐츠가 전달된 순간부터가 중요해진다. 이 때가 게임의 시작이다. 한번 게재된 콘텐츠는 사람들의 활동에 따라 끊임없이 연결되고 진화 할 수 있는 잠재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전통 미디어는 ‘낚시’ 글을 반복적으로 작성하는 언론사나 포털처럼 메시지의 진열과 노출에 집중 하지만 오가닉 미디어는 네트워크의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콘텐츠에 관심을 갖고 연결하게 함으로써 콘텐츠의 생명력을 연결하고 진화시키는 데 몰두한다. (42~43쪽)

원인보다는 결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외에도 이 책에는 먀샬 매클루언이 공감했을만한 몇가지 주장이 있다. 예를 들면 ‘전달(transmission)’의 이슈가 그렇다. 매클루언은 이것을 “운송이냐 변환이냐(transportation vs. transformation)”로 설명했는데, 바로 제품 전달의 문제가 그것이다. 매클루언은 자신이 자문을 했던 산업분야들의 제품 중심적 사고에 회의적이었다. 저자만큼이나 과정(process)을 강조했다. 콘텐츠의 생명은 공개되는 순간부터 비로소 시작된다는 윤지영의 기본 개념에서 매클루언은 토마스 엘리엇의 환영을 느끼고 흡족해 했을 것이다(“나의 끝은 나의 시작이다”, 토마스 엘리엇,  개의 사중주 중에서).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콘텐츠가 전달되고 난 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유동적인 상호작용을 분석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흐름 상태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구조적으로 구분(parsing)해내야 하는 문제 때문이다. 저자는 체계적인 접근을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한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일종의 “네트워크 문법”을 제공한다. 이것은 연결성, 개방성, 사회성, 유기성이라는 4개의 변수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공간 대 네트워크,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연결된 것과 고립된 것 등과 같은 상반된 개념의 대비 관계를 아우르고 있다.

모든 인터넷 서비스는 그 유형과 목적을 막론하고 모두 사용자 네트워크와 정보 네트워크, 그리고 이 둘 네트워크 간의 결합(하이브리드 네트워크)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리 말하면, 인터넷 서비스 구조의 쟁점은 ‘네트워크’에 있다. 콘텐츠와 사용자가 각각, 그리고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서비스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1~142쪽)

이 책은 위에서 언급한 “여파(aftermath)”의 형태(articulation)와 과정에 대해 세밀한 분석과 명확한 설명을 제시할 뿐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을 갖가지 다양한 (네트워크화된)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통찰로 가득 차 있다. 아래는 몇 가지 예시들이다.

미래에는 누구나 저자이자 독자가 될 것이다. 수많은 읽을 거리 속에서 “읽을 가치가 있는” 콘텐츠의 여과는 독자가 사후적으로 하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는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고, 독자와 콘텐츠를 효율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에 집중하게 될지도 모른다 (58쪽)

오가닉 미디어의 첫 번째 장의 주제는 책이다. 책은 콘텐츠 산업이 미디어를 여전히 운반 수단으로만 여기고 스스로의 역할을 계속 콘텐츠 제작과 유통에 국한시킨 나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여기에서 쟁점은 콘텐츠(content), 컨테이너(container) 그리고 컨텍스트(context)간의 관계를 파헤치는 것이다. 하지만 콘텐츠, 컨테이터, 그리고 컨텍스트의 상당 부분이 서로 동일한 디지털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 때문에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콘텐츠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콘텐츠가 아니다.

컨텍스트에 답이 있다

저자는 네트워크의 여러 측면 중에서 컨텍스트(context)를 가장 중요시 한다. 그리고 물론, 이것은 당연한 주장이다. 그런데 저자가 직접 거론하지 않았어도 컨텍스트(context)의 개념에는 커뮤니티(community) 개념이 연결되어 있다. 미디어가 유기적인 이유는 사람들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의도와 프로젝트, 구현 과정 등과 연계되어 있다. 개인들의 욕구(drives)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진다. 크라우드 펀딩(crowd-funding)을 사례로 들어보자. 사람들은 마음 가는대로 돈을 투자한다. 투자는 금전적인 동시에 감정적인 것이다. 투자자들은 투자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스스로를 성장하는 커뮤니티의 일부로 느끼기 시작한다. 그들은 제품과 직접적인 관계를 갖게 되고 실제 제품과 시장 가치 간의 간극이 없다고 확신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인간적 만족을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경제적 공식(formula)이며 제 3자가 무기명(unknown) 주식을 관리하는 기존의 방법보다 뛰어나다.

나는 “미래에는 누구나 저자이자 독자가 될 것”이라는 문장에 매우 공감한다. 내가 만든 “wreader”라는 신조어도 컴퓨터나 태블릿(tablet) 등의 화면에서 글을 읽는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특히 터치 스크린(tactile screen)의 경우는 더하지만 사람들은 키보드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든 만지작거리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낀다. 우리는 상호작용하게 되어있다.

우리는 콘텐츠(content)를 평가할 때 숫자만을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양적인 데이터는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사람들의 개입 정도를 대략적으로 나타낼 뿐이다. 그런데 데이터 분석은 질적인 분석 결과도 가능케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는 글이 독자들의 커뮤니티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구체적이고 중요한 방법을 제시한다.

네트워크가 공간이다

이 주제는 3부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이에 대한 통찰을 통해 저자는 공간 관점과 네트워크 관점에 기반을 둔 미디어(매개) 플래닝이 어떻게 각각 다른지 설명한다.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지지층을 막연히 ‘20대, 30대 남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원시적이며 엄청난 실수로 이르게 되는 지름길이다. 공간 관점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많이 보여주는 것은 점점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203쪽)

그렇다면, “공간 관점”이란 무엇인가? 머리 속에서 그리는 지도에 대한 질문이다. 네트워크는 이 지도를 유동적(liquid) 건축물로 대체한다. 예를 들어, 트위터와 같은 네트워크 구조를 떠올려 보면, 우리 머리 속에 그려지는 것은 어느 쪽인가? 정의되지 않은 모호한 바탕의 무수한 점들인가(space-centric), 아니면 여러 관계로 이뤄진, 정의되지 않은 구조물을 이루는 능동적 노드들(nodes)인가(network-centric)?

반대로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설득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은 한 장소에 모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메시지 전달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 이 메시지를 접촉하고서 하게 되는 각각의 다양한 ‘매개’ 행동들이다. 즉 공간의 경우 양적인 도달까지가 중요하다면 이 경우는 오히려 그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메시지를 공유하고 연결하고, 제품을 추천하고 평가하고, ‘좋다’ ‘싫다’ 표현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메시지를 ‘연결’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단계다. (203~204쪽)

4 부는 매개에 대한 고찰인데,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연속적인 매개의 사례인지 논의한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어떤 형태로든 발행된다(published). 모든 것이 매개되어 있다. 그러므로 창조된 모든 콘텐츠는 재창조되고 소비되게 되어 있다. 콘텐츠는 사회적 참여(engagement)의 구실(pretext)을 제공한다. 저자는 그렇게 달라진 콘텐츠를 어떻게 관리하고 우리가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하나씩 설명해나간다. 저자는 콘텐츠(content) 매개를 창조, 재창조, 복제, 그리고 소비의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분류는 아래에서 이야기 하듯, 마케팅 캠페인의 실질적이고 잠재적인 영향을 평가하는 데 있어 매우 유용하다.

실제로, 창조와 재창조만으로 거대하고 역동적인 네트워크를 논하기는 어렵다. 콘텐츠를 생산하고 리뷰하고 토론하고 패러디 하는 사용자는 실제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적인 확산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복제형 매개다. 이미 매개된 콘테츠의 내용을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가시성’을 높이고 양적으로 확산하는 역할을 한다. 클릭 한번으로 콘텐츠를 복제하고 퍼뜨릴 수 있다. 이 경우는 ‘숫자’가 콘텐츠가 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관심을 갖는지가 내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준다. (……) 이렇듯 복제형 매개는 ‘무단복제’와 다르다. 콘텐츠를 복사해서 내 것인 양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좋다 싫다 표현하는 행위가 콘텐츠를 복제해서 퍼 나르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253~254쪽)

제 5부의 주제는 사용자다.

여기서는 요즘 미디어의 뜨거운 이슈로 부상한 정체성(identity), 프라이버시(privacy), 투명성(transparency) 그리고 가시성(visibility)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이 정의하기 어려운 주제들이 크게 네 가지 상호의존적 차원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일시(identification)와 차별화(differentiation), 공적인 나(public me)과 사적인 나(private me)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매클루언(McLuhan)의 논란의 모형, ‘테트라드(Tetrad)’를 차용한다. 매클루언(McLuhan)의 테트라드(Tetrad)를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모든 새로운 미디어(medium)는 인간의 마음과 신체의 속성을 확장한다. 이전의 미디어를 폐기시키거나 약하게 만든다. 동시에 더 오래된 미디어를 다시 회귀시키는 작용을 한다(retrieve). 그러다 이 새로운 미디어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처음 의도와 정반대 효과로 뒤짚힌다. 내가 윤지영의 테트라드(Tetrad)를 해석하자면, 새로운 미디어로서의 네트워크는 가시성을 높여주는 한편 프라이버시를 포기시킨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족사회의 공적 역할(tribal-like public)을 회귀시킨다. 그리고 네트워킹이 극에 달하게 되면 지나치게 노출된 개인은 오히려 사회적으로 외면당한다.

폐쇄된 공간이 아닌, 열려 있는 네트워크에서 나의 가시성은 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사용자를 통해 콘텐츠가 공유되고 유통되면서 노드와 링크가 생성되고 유지되는 과정이 반복되어야 한다. 유기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소셜 미디어에서는 영역 간의 경계 대신 사용자의 매개를 통해 ‘어디에나’ 존재하는 ‘가시성’이 만들어진다. 즉 오가닉 미디어에서 공적 영역은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 활동과 매개를 통해 확장되는 것이다. (p. 270)

청중은 나를 정의한다

우리가 지금껏 알아 온 정체성의 의미가 복합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오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이 5부의 제목에서 또 다시 저자의 독창적인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내 가 내 정체성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청중을 만들고 이 청중이 모여 나를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 청중도 미리 정해지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청중은 나날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나와 연결되는 한 명 한 명의 합이다. 이들을 통해 내가 정의되고 수정되고 진화한다.(315쪽)

그리고 몇 페이지 뒤에서, 저자는 극단적인 투명성의 도래를 조명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고려하지도 못하거나 믿기 어려운 네트워크의 이 속성을 독자들에게 깨우쳐 준다.

가시성은 이제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범위는 생각보다 훨씬 넓다. 단순히 내 지인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친구, 더 나아가 친구의 친구로 연결된 인터넷의 모든 사용자가 나를 지켜 볼 수 있다.(320쪽)

아마 마샬 매클루언도 오가닉 미디어를 즐기며 읽었을 것이다. 이 책은 미디어가 인간의 복잡한 중추신경계를 어떻게 확장하는지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클루언이 공감했을만한 많은 통찰이 있다. 매클루언이 당시에 모호하게 언급하고 지나갔던 견해(obscure pronouncements)에 대한 시원스러운 해석(spontaneous explication)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독자들이 서문을 읽고 본문으로 바로 빠져들 수 있도록, 다음의 유사점들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매클루언은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영향을 받았다. 매클루언은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작품의 인과적 가치보다 경험이 주는 느낌, 이에 대한 평가라고 보았다. 인상주의가 좋은 예다. 인상주의 화가는 주어진 사물이나 주제를 정확히 표현하는 것보다 보는 사람의 경험을 강조한다. 사실, 매클루언의 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편향(bias)은 인과관계보다 효과(effects)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 덕택에 그는 혁신의 결과를 성공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던 반면 데카르트 학파의 동료들의 노여움을 사기도 했다. 예술가들이 예술을 대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그녀는 비즈니스 공동체를 논한다. 저자는 원인, 즉, 네트워크를 주어진 것으로 여기고 네트워크가 가져다 주는 효과/결과에 집중한다. 기업이 얻고자 하는 결과, 반응, 인상은 무엇인가?

두 사상가의 다른 공통점은 우리에게 공간적 관계(spatial relationships)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전구는 360도 정보다(The electric bulb is 360 degree information)”라는 매클루언의 유명한 직관은 비즈니스의 관점을 공간적 테두리(spatial perimeter)에 가두지 말고 연결의 잠재성(networking potential)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안과 밖이 뒤바뀌는(reversal) 현상에 대한 그녀의 날카로운(astute) 관찰과도 일치한다.

인터넷 기반 미디어들이 만든 새로운 시장에서는 안과 밖의 구분이 없어졌다. 응용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를 개방해서 내 것을 내주고, 세상 도처에서 생산되는 사용자의 흔적과 활동을 내 자원으로 활용하는 시장이 되었다. 사업자들에게는 자신의 서비스가 안쪽이고 경쟁 서비스들이 바깥쪽이겠지만 사용자들에게는 안과 밖의 경계가 없다. (38쪽)

크라우드 소싱(Crowdsourcing)은 이러한 반전(reversal)의 사례다. 구체적으로, 캐나다의 금광 업체 골드코프(Goldcorp)가 파산 직전까지 갔다가 기사회생한 유명한 사례처럼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오늘날 골드코프(Goldcorp)는 북미 최대의 금 생산업체 중 하나다. 골드코프(Goldcorp)가 죽음 직전에서 살아 날 수 있었던 것은 난관에 부딪힌 회사의 경영진이 일급 비밀이던 채굴 기록 및 관련 정보를 전세계에 공개하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경영진은 전세계 전문가와 채굴광들로부터 잠재 채굴지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위에서 나는 콘텐츠(content)와 컨테이너(carrier) 간의 상관 관계에 있어, 두 저자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기존과 다른 접근 방법에 대해 언급했다. 쉐넌-위버(Shannon-Weaver)의 “송신자(sender)–채널(channel)(잡음 (noise))–수신자(receiver)” 모델에서, 매클루언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당연히 잡음(noise)이었다. 두 저자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공학적 문제인 콘텐츠(content)의 정확한 전달이 아니라 콘텐츠(content)와 컨테이너(carrier)의 효과에 있었다. 이 아이디어의 논리적 귀결로, 매클루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기에 이른다: “미디어가 메시지라면, 사용자가 콘텐츠다”. 동일한 아이디어의 연장선 상에서 저자 또한 아래와 같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SNS 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물어볼 것도 없이 이 모든 현상을 만드는 주인공은 ‘사용자’, 바로 우리 자신이다. 사용자 활동이 없으면 이 모든 현상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SNS 없이는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좋든 싫든 이제 인터넷 공간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존재’하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283쪽)

“전기(electronic) 미디어가 중추신경계의 확장”이라는 매클루언의 비유(common understanding)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는 매클루언이 이 비유를 얼마나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는지를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빠른 속도로 우리는 인간 확장의 최종 국면, 즉, 의식의 기술적 시뮬레이션에 접어들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감각과 신경을 확장하였듯이, 인식(knowing)이라는 창조적 과정이 집단적으로, 또 협업적으로 인간 사회 전체로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p.19)… 전보(telegraph)를 통해 인간이 중추신경계의 확장을 시작하였고, 이제는 더 나아가 위성 방송으로 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pp. 19, 222, 1964]

모두 언급하기에 너무 많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매클루언의 영향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형태의 표절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덧붙이고 싶다. 저자는 매클루언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감을 받았을 때는 그를 여러 번 인용하였다. 그 외의 통찰은 독창적이다. 이러한 유사성은 저자가 매클루언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매클루언과 미디어에 대한 이해를 공유한 데서 비롯된다.

그리고 몇 가지 중대한 차이점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연결의 역할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매클루언은 쉽게 동의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관점은 확실하게 시각이 아닌 청각에 편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관계를 이해하는 데에 시각적 편견이 잘못 적용된 것이 연결(connections)이라고 여겼다. 그는 오히려 사물, 사람, 의미 사이에 존재하는 일종의 진동 공간(vibrant space)을 드러내기 위해 ‘공명의 간격(interval of resonance)’이라는 은유를 더 선호했을 것이다. 이는 춤과 창작의 공간이자, 바퀴와 축의 플레이 공간이다. 둘 중 하나라도 없으면 움직임은 불가능하다. 매클루언과 저자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출발점에 있다. 저자는 TV 시대의 매클루언에게는 명백하지 않았던 미디어의 특성인 네트워크 분야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라는 단어가 ‘TV 네트워크’의 용어였다가 인터넷과 컴퓨터와 함께 관계적 속성을 나타내는 용어로 발전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매클루언이 마지막 미디어 연구를 발표한 지 한참 후에서야 말이다. 나는 오가닉 미디어가 매클루언의 생각을 가장 멀리, 그러면서도 진정 독립적으로 확장시킨 책이라고 평가한다.

오가닉 미디어를 읽으면서 무엇을 발견했는지 묻는다면, 사실 발견을 멈춘 적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나는 수십 년간 네트워크와 진지하게 마주해왔다. 네트워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까지는 할 수 없어도, 이제는 크게 놀랄만한 새로운 발견은 없을 만큼 충분히 연구해왔다고 생각했다. 저자의 책이 이토록 놀라운 이유는 인터넷이나 사용자의 행위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서가 아니다. 네트워크에 대한 다른 관점 때문이다. 미디어를 유기적인(organic) 것으로 보는 그녀의 관점이 더욱 포괄적이고 복합적으로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하게 한 것이다. 파스칼(Blaise Pascal)은 상식(common knowledge)에 대한 자신의 접근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다고 말하지 말기를! 콘텐츠(content)의 배치(layout)가 새로운 것이다. 공을 가지고 놀 때 모두 같은 공을 사용하지만, 누군가는 그 공을 더 잘 다루기 마련이다. (Qu’on ne dise pas que je n’ai rien dit de nouveau: la disposition des matières est nouvelle; quand on joue à la paume, c’est une même balle dont joue l’un et l’autre, mais l’un la place mieux.)” (Pensées, 022)

2015년 7월 23일
데릭 드 커코브, 위클로(Wicklow)에서.

[영어 원문] Foreword in English: Dr. Derrick de Kerckh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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