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테이너의 숨겨진 쟁점의 이해

Understanding Containers in Organic Media

그동안 미디어 연구의 대상이 되어온 사례들은 수십 년, 또는 수백 년에 하나씩 태어난 것들이다. 우리는 흔히 인쇄 매체,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등으로 미디어를 구분하고 서로의 역할과 차이점을 비교해왔다. 여기서 기준점은 물리적 컨테이너의 종류와 콘텐츠의 종류다. 뉴스가 들어 있으면 신문이고, 지식이 들어 있으면 책이며, 동영상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것은 텔레비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인터넷 공간에서 컨테이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화되고 그 구조는 낱낱이 해체되었다. 이 단락에서는 컨테이너의 진화 현상을 관찰하고, 컨테이너에 대해 숨겨진 쟁점을 발견하는 데 초점을 맞추려 한다. 미디어의 진화를 이해하기 위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의 시간이 될 것이다.

물리적 컨테이너에서 벗어나는 것은 ‘깨어남’이다

우리는 미디어의 컨테이너를 통상적으로 책, 텔레비전, 라디오 등 물리적인 틀로만 인지해왔다. 하지만 컨테이너에는 숨겨진 쟁점이 있다. 철학자이자 과학기술자(technologist)인 데이빗 와인버거(David Weinberger[1])는 2012년 《지식의 미래(Too Big to Know)》[2]에서 컨테이너의 형태(form)가 우리의 사고와 지식을 규정하고 가두어 왔음을 지적한 바 있다. 예를 들면 ‘책의 형태에 기반한 사고(book-shaped thoughts)’는 평면적이고 획일적이며 순차적(sequential)이어서 이러한 책을 통해 습득된 지식은 그동안 이 인쇄 매체의 물리적 형태(form)와 특성 속에 우리를 가두왔다는 것이다.

책이 우리에게 지식을 주는 도구였지만 반면 우리의 생각을 가둬놓는 틀이기도 했다는 지적은 충격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의식이 깨어난다. 수백 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마치 지구가 우주의 일부임을 깨닫기 전 단계에 그러했듯) 그것을‘전체’로 받아들이던 단계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책의 역할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미디어에서 ‘틀’로만 이해해온 컨테이너에 대한 고정관념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들이 그 ‘깨어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컨테이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컨테이너의 정의에 내재된 한계부터 다시 알아보아야 한다.

컨테이너의 일반적 정의

앞에서 컨테이너를 메시지(내용물, 콘텐츠)를 담고 있는 단위로 간략히 정의하였다. 여기에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와 환경‘이라는 미디어의 정의를 더한다면 미디어 컨테이너를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디어에서 컨테이너는 내용물을 담는 용기인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전달하고 수신하는 장치(시스템)를 포함하는 단말기(Terminal)라는 의미를 공통적으로 내포한다.

방송 프로그램을 수신하는 텔레비전, 음악을 듣는 MP3 플레이어, 종이책 등이 이와 같은 의미의 대표적인 미디어 컨테이너다. 책은 텍스트와 이미지 등을 통해(최근에는 동영상과 오디오 파일까지 포함한다) 저자의 메시지를 담아 독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독자는 책을 통해 그 메시지를 수신한다. 다만 얼마나 실시간성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뉴미디어와 전통 미디어 컨테이너의 뉘앙스가 달라질 뿐이다.

그러나 ‘미디어의 3요소’에서 살펴본 것처럼 더 이상 손에 잡히는 물리적 용기만이 컨테이너는 아니다. 책의 경우는 종이책뿐 아니라 아마존 킨들이라는 전자책 리더도 컨테이너이고, 그 안에 담긴 전자책도 컨테이너다. 종이와 제본 대신 전자 화면과 코드로 이루어진 컨테이너인 것이다. 그렇다면 콘텐츠를 담고 있고 전달 방법(수단)을 가지고 있는 모든 미디어, 예를 들면 영화·소설·음악 등도 컨테이너로 볼 수 있다. 책이 종이 페이지를 가지고 있듯 영화도 필름 컷(film cut)을 가지고 있으며, 음악도 악보·악기 등의 수단을 통해 우리에게 내용물을 전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컨테이너는 (물리적이든 아니든) 여전히 내용물을 담고 있으며 전달 장치를 포함한 틀로 정의된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 정의에 있다. 컨테이너의 개념을 자꾸 콘텐츠를 담고 있는 틀에 국한하게 되는 것이다. 컨테이너를 콘텐츠와의 포함 관계에서 분리해보면 그동안 숨겨져 있던 컨테이너의 쟁점을 몇 가지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오가닉 미디어 현상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컨테이너의 3가지 쟁점

레미제라블(Les Miérables)[3]‘을 예로 들어 보자. 《레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로 지금도 영화[4]와 뮤지컬로 사랑받고 있다. 또한 뮤지컬을 위해 작곡된 《레미제라블》의 음악은 피겨스케이팅 프로그램의 배경음악[5]으로도 사용되었다. 100년이 넘도록 다양하게 해석되고 인기를 누리는 만큼 《레미제라블》의 컨테이너도 다양해졌다. 그런데 현상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이 컨테이너들은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콘텐츠도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제목의 책, 영화, MP3는 컨테이너다. ‘레미제라블’이라는 내용(콘텐츠)을 담고 있으며, 이를 독자와 관객, 청취자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반면 영화 <레미제라블>은 영화관이라는 컨테이너의 콘텐츠이기도 하다. 영화관은 수많은 콘텐츠(영화)를 관객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컨테이너이기 때문이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레미제라블의 메시지를 담은 컨테이너이지만 동시에 뮤지컬과 영화의 콘텐츠이기도 하다. 피겨프로그램의 콘텐츠(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소설로 전달될 때에는 페이지라는 용기를 거쳐 다시 ‘책’이라는 용기로 전달된다. 이때 페이지도 컨테이너인 동시에 콘텐츠가 된다.

모든 컨테이너는 맥락에 따라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콘텐츠를 전달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논의될 수 없다.

모든 컨테이너는 맥락에 따라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콘텐츠를 전달하는 역할에 국한되어 논의될 수 없다.

위의 그림은 컨테이너와 콘텐츠의 관계를 도식화해서 나타낸 것이다. 컨테이너1은 콘텐츠1을 담고 있지만 컨테이너2에서는 콘텐츠가 된다. 또 거꾸로 콘텐츠3은 동시에 컨테이너2이기도 하다. 유튜브 동영상은 뮤지컬이나 피겨스케이팅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지만, 이것이 페이스북에 링크되면 이때는 다시 콘텐츠가 된다.

관점에 따라 컨테이너가 콘텐츠가 되고 콘텐츠가 컨테이너가 되는 현상은 세 가지 측면에서 숨겨진 쟁점을 드러낸다.

1. 컨테이너는 세상을 인지하는 틀걸이이다

첫째, 내용물(메시지)만으로는 컨테이너를 온전히 정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컨테이너와 콘텐츠는 (서로 의존관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리되어 사고될 수밖에 없다.

컨테이너의 쟁점은 콘텐츠를 넘어선다. 이것은 미디어 자체를 메시지(콘텐츠)[6]로 봐야 한다는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7]의 주장과도 연결된다.[8] 사실 우리가 언급하는 컨테이너는 매클루언의 연구에서 ‘미디어’로 명명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다만, 매클루언의 미디어에 반해 컨테이너라는 개념은 반드시 ‘콘텐츠(담겨 있는 내용물)’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하겠다.

컨테이너와 콘텐츠를 분리하고 컨테이너를 메시지로 보면 컨테이너의 다른 면모에 눈을 뜨게 된다. 매클이 지적한 ‘사회적’ 역할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은 지속적이고(continuous) 순차적인(sequential) 방식으로 쓰인다. 이렇게 작성된 콘텐츠는 획일적인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를 통해 생산된다. 이것이 인쇄물이다. 매클은 18세기 이러한 인쇄물의 매체적 특성이 사람들을 획일화(uniformise)하는 데 기여했으며, 사회 전체를 하나로 움직이게 하는 인쇄 매체의 힘이 프랑스혁명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9] 인쇄물이라는 미디어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된 사례다.

처럼 컨테이너의 궁극적 역할은 콘텐츠를 전달하는  국한되지 않는다. 컨테이너는 사람들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10]

2. 모든 컨테이너는 서로 연결되고 공존한다

둘째, 하나의 컨테이너는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컨테이너들과의 연결된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는 매클루언이 새로운 미디어는 이전 미디어를 근간으로 파생되거나 확장된다고 언급한 관점과도 같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이전 미디어의 사회적·관계적 영향력을 확대하거나 증폭하는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이렇게 등장한 뉴미디어(컨테이너)는 언제든지 이후에 등장하는 뉴미디어(컨테이너)들에 고스란히 다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대중’을 보자. 대중이라는 단위는 텔레비전과 함께 급작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인쇄물의 보급에서부터 ‘불특정 다수’라는 메시지 수신자 그룹이 생겨났고, 방송 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증폭(acceleration)된 것이다. 인쇄물의 사회적 효과와 영향력도 맥락을 같이한다. 이미 텍스트라는 미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기에 20세기 초반 이후 등장한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그 현상을 더욱 증폭시켰다. 그렇게 해서 메시지 수신자들은 ‘대중(mass)’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쉽게 묶일 수 있었다. 대중들은 동시에 같은 메시지를 공유하면서도 즉각적으로(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지 못한다. 물리적으로는 분산되어 있으나 구조적으로는 하나의 메시지를 수용하는 수동적인 집단이다. 이것이 대중의 정의이자 정체성이며, 콘텐츠 자체보다 컨테이너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모든 미디어 컨테이너가 서로 연결되고 공존하는 현상은 오가닉 미디어 시장에 와서 현저하게 두드러진다. 모든 단말기와 서비스와 콘텐츠는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 새롭게 생겨나는 컨테이너들은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 전후 환경 및 연결된 컨테이너들과 공존하면서 서로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된다.

3. 컨테이너의 실체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가변적이다

셋째, 이러한 컨테이너들의 연결 관계는 컨테이너의 세 번째 쟁점을 낳는다. 컨테이너의 형태는 여러 컨테이너 간의 관계와 사용 패턴에 따라 계속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컨테이너는 자신이 담고 있는 콘텐츠를 통해서만 정의되지 않는다는 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전후 주변 컨테이너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에서 출발하면 컨테이너의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컨테이너는 손에 잡히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콘텐츠 및 다른 컨테이너들과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으로 인식’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컨테이너는 언제든지 다른 컨테이너의 콘텐츠가 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컨테이너는 물리적 형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가변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컨테이너는 물리적 형태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가변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지금의 인터넷 공간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위의 이미지에서 왼쪽은 ‘레미제라블’ 검색 결과를, 오른쪽은 페이스북 포스트에 언급된 <레미제라블> 동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검색 결과에는 ‘레미제라블’ 관련 역사와 영화, 뮤지컬이라는 콘텐츠 및 컨테이너가 다양하게 언급되어 있고, 검색 결과라는 묶음이 다시 하나의 콘텐츠 및 컨테이너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포스트는 영화 <레미제라블>의 동영상과 이를 패러디한 동영상을 나란히 담고 있으며, 이 상황에서 유튜브 동영상은 콘텐츠가 되었고 페이스북 포스트는 기꺼이 컨테이너의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컨테이너란 어떤 내용물을 담고 있는 ‘상태’를 정의할 뿐이며 그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다. 2014년 현재 뉴스피드 중심의 페이스북에서는 예전의 프로필 중심의 페이스북을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지금의 모습도 하나의 ‘상태’(스냅샷)에 불과하며 가변적이다. 물리적 형태라는 것은 우리가 컨테이너에 대해 가져온 제한된 시각일 뿐이다.

구조적 컨테이너의 출현이 가져온 새로운 시작

인터넷 서비스들이 만드는 네트워크는 다양하고 노드의 종류는 혼합적hybrid이다. 그리고 이러한 컨테이너들이 서로 적극적으로 연결된다. 이 유기적 환경 속에서 메시지들은 여러 서비스 사이를 흘러 다닌다. 뉴스는 신문에 담기지 않고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에 한 조각씩 흘러 다닌다. 하루에도 수많은 서비스들이 출현하고[11] 진화하고 소멸하는 환경에서 물리적인 컨테이너 단위는 의미를 갖기 어려워졌다. 전송 방식도, 어느 단말에 담겨 있는가도, 어떤 종류의 콘텐츠인가도 온전한 구분점이 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으로 미디어를 구분할 것인가?

1. 유연한 서비스 구조와 사용자 관계

구조적 컨테이너 관점에서 보면 미디어를 구분하는 것은 미디어와 사용자의 ‘관계를 만드는 구조’다. 구조는 사용자의 피드백에 따라 언제든지 수정되고 변형될 수 있는 가변적 형태를 띤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의 친구 관계, 뉴스피드로 매개된 콘텐츠와 사용자의 관계가 페이스북을 규정하는 구조가 된다. 2005년 선보인 페이스북의 뉴스피드는 2014년 현재의 (사용자 간 상호작용이 강화된) 모습이 되기까지 수많은 구조의 변화를 거쳐왔다.

서비스 구조에는 세 가지가 포함된다. 첫째, 콘텐츠가 연결되는 구조로, 이는 콘텐츠 간의 네트워크 유형을 만든다. 둘째, 사용자가 연결되는 구조로, 이는 친구·구독·구매 등 사용자 간 네트워크를 만든다. 마지막으로 콘텐츠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구조로, 이는 콘텐츠(메시지, 제품, 정보 등)와 사용자를 노드로 하는 하이브리드 네트워크로 표현된다(이 세 가지 네트워크에 대한 구체적 설명과 예시는 2부의 ‘트위터 서비스 구조 해부하기’에서 다룰 것이다). 이러한 콘텐츠, 사용자 관계로 이루어진 관계도(네트워크)가 궁극의 컨테이너 구조를 형성한다.

이들은 물리적 틀 대신 구조적으로 미디어를 나타내는 구분자다. 사용자들이 미디어를 사용할 때 이 구조를 직접 인지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은 구조가 표현된 사용자 인터페이스(UI, User Interface)를 통해 간접적으로 컨테이너를 인지할 뿐이다. 그리고 사용자들은 사용자 경험(UX, User Experience)을 통해 이 컨테이너 구조에 대해 끊임없이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2. 깨어남에서 새로운 시작으로

지금까지 컨테이너의 쟁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컨테이너는 본래 콘텐츠를 담고 있는 틀에 국한되지 않을 뿐 아니라 미디어 및 사고 체계를 정의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기점으로 우리는 컨테이너가 물리적으로 해체되고 구조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컨테이너는 이제 구조적으로만 존재하고 가변적이며 오직 ‘상태’를 정의하는 유연한 틀임을 살펴보았다.
미디어의 세 가지 구성 요소 중 컨테이너는 양날의 칼이다. 역사적으로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은 새로운 컨테이너(구조)의 출현이나 다름없었다. 컨테이너가 시장의 진화를 이끌어온 주체가 되어왔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 컨테이너를 매개로 대화하고 생산하고 공유하면서 우리의 사고 체계도 컨테이너 속에 기꺼이 가두어놓았다.
지금 시장에서 나타나는 미디어의 진화는 우리 스스로 컨테이너로부터 사고 체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컨테이너를 객관화함으로써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가능해졌다. 의식의 깨어남, 즉 컨테이너로부터의 깨어남은 콘텐츠컨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열림이며 사용자가 미디어의 주인이 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갈림 길>

(일러두기: 필자가 언급하는 컨테이너는 기본적으로 매클루언의 미디어 관점과 맞닿아 있다. 다만, 우리는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는 것 보다, 오가닉 미디어가 전통적 미디어와 어떻게 구별되는지, 그 차별점을 담을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구조화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이를 통해 인터넷 기반의 미디어 현상이 기존의 것과 근본적으로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즉, 매클루언의 ‘미디어는 메시지다(medium is message)’라는 정의와 맥을 같이 하면서도, 미디어를 컨테이너, 컨텐츠, 컨텍스트의 요소로 해부하는 과정을 거쳐 오가닉 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관점(perspective)에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매클루언의 ‘미디어’를 ‘컨테이너’로 독해하고 언급한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음을 일러두고자 한다.)


  1. "David Weinberger,"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David_Weinberger, [Accessed on Oct 1, 2013].
  2. David Weinberger, Too Big to Know: Rethinking Knowledge Now That the Facts Aren't the Facts, Experts Are Everywhere, and the Smartest Person in the Room Is the Room, Basic Books, 2012.
  3. "Les Misérables,"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Les_Miserables, [Accessed on Oct 1, 2013].
  4. Tom Hooper, Les Misérables, Universal Pictures, 2012, http://imdb.com/title/tt1707386, [Accessed on Oct 1, 2013].
  5. "2013 ISU Figure Skating World Championship FS Kim Yuna Les Miserables," ISU World Figure Skating Championships 2013, London, Canada,, Mar 16, 2013, http://www.youtube.com/watch?v=iOw2oY4NZYI [Accessed on Oct 1, 2013].
  6. "The medium is the message,"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The_medium_is_the_message, [Accessed on Oct 1, 2013].
  7. http://www.marshallmcluhan.com/
  8. Marshall McLuhan and Quentin Fiore, The Medium is the Massage: An Inventory of Effects, Bantam Books, 1967.
  9. Marshall McLuhan and Lewis H. Lapham,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The MIT Press, 1994, (Original work published in 1964).
  10. ibid.
  11. Shara Tibken, "Google ties Apple with 700,000 Android apps," Cnet, Oct 30, 2012, http://news.cnet.com/8301-1035_3-57542502-94/google-ties-apple-with-700000-android-ap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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