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곧 시작이다

The End is the Beginning

이 책은 실험의 결과다. 실험은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행해졌다. 살아서 진화하는 시장에 적합한 콘텐츠에 대한 실험이다. 글에 대한 독자의 반응과 피드백을 체크하면서 실시간으로 글을 완성했다. 완벽하다고 생각될 때까지 글을 붙들고 아무것도 공개하지 않았다면 아직 한 장도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제별로 하나씩 블로그에 공개하고 독자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미리 써두었던 내용과 공개된 후의 내용을 비교하면 천지 차이다. 많은 시행착오와 상호작용을 거쳐 다른 스토리텔링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매개 활동이 중심이 되는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순서가 뒤바뀐다.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으로 마지막 산고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공개와 함께 콘텐츠의 생명이 시작된다. 바로 죽거나 서서히 죽거나 진화하거나. 이 단락에서는 살아 있는 콘텐츠가 오가닉 미디어 시장에 던지는 쟁점에 대해 논의한다. 구체적으로 콘텐츠를 살아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미디어의 질서를 재구성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실험의 결과

체험은 언제나 상상과 다르다. 글을 공개할 때마다 내 판단은 빗나갔다. 나 스스로 클라이막스라고 생각했던 글에서 독자의 반응은 냉랭했고, 스토리 전개를 위해 할 수 없이 삽입한 글에서는 폭발적인 반응이 있기도 했다. 글을 통해 인기를 얻고 블로그 트래픽을 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으므로 한 가지에만 집중했다. 누가, 왜, 어떻게 공유하고 피드백을 주는가 하는 점이었다.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타깃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고, 스토리텔링 방식도 점차 개선하려고 애썼다.

오가닉미디어랩(http://organicmedialab.com)에 블로그 게시 글로 공개된 글들은 각자 운명을 달리했다. 어떤 글은 순식간에 300회 이상 공유되면서 내 손이 닿지 않는 먼 곳까지 퍼져 갔고 다른 사람의 콘텐츠와 합쳐지기도 했으며, 어떤 글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읽히고 피드백조차 받지 못했다. 어떤 글은 내용이 부족해서, 전달하는 방법이 서툴러서, 혼자 흥분해서(독자를 고려하지 못해서) 등 실패의 원인은 다양했다. 원인을 파악하고 새로운 방법을 적용해보는 과정은 오가닉 미디어에 대한 진정한 체험이었다.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사용자가 정했다. 공유된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피드백을 받았지만 공유되지 않은 글은 잠정적으로 사망했다. 위의 이미지는 블로그 포스트의 공유 숫자다. 무참히 참패한 오른쪽 글은 내 야심작이다. 이런 피드백이 피가 되어 책을 재구성하고 보완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오가닉 미디어랩에서 블로그 포스트로 공개된 글들은 각자 운명을 달리했다. 어떤 글은 순식간에 퍼졌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무관심속에 잊혀지거나 지속적으로 공유되고 진화하기도 한다.

오가닉미디어랩에서 블로그 포스트로 공개된 글들은 각자 운명을 달리했다. 어떤 글은 순식간에 퍼졌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무관심속에 잊혀지거나 지속적으로 공유되고 진화하기도 한다.

저자의 관점에서는 두 가지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첫째, 독자들이 애써 집중하지 않아도 (내용의 깊이에 관계없이) 흥미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재미없는 글은 읽히지 않는다. 깊이 있는 글을 포기하고 가벼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글이 어렵다는 말은 독자가 무식해서가 아니라 필자가 무식해서 듣는 말이었다. 이제 글은 골방에서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함께 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자는 모두 매개자이고 협력자이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많은 시간을 들일수록 독자의 시간을 벌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는 읽을 시간이 없고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런 독자를 붙들어 세우고 심지어 글을 공유하기까지 하면서 소중한 시간을 쓰도록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독자의 시간을 벌어주었을 때 독자들은 ‘공유’로 응답해주었다. 글을 읽어서 시간을 벌게 하려면 독자 대신 퍼즐을 미리 맞춰놓아야 한다. 체험하고 고민한 흔적을 날것 그대로 토해내지 않고 다시 많은 시간 정성을 들여 사무치게 고민하고 연결하고 검증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콘텐츠는 살아있다

이 두 가지를 되새기고 노력할수록 내가 생산하는 콘텐츠의 생명력은 연장되고 커졌다. 이제 콘텐츠에 대한 가치판단은 독자를 통해서만 가능해졌다. 그것도 공개된 이후에 말이다. 하나하나의 글은 매번 출판되었지만, ‘공개(publish)’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것은 내가 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피드백을 받는 과정이었고, 독자들이 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거리(things)’를 제공하는 과정이었다.

1. 매개가 만드는 콘텐츠 본질의 변화

전통적으로 콘텐츠에서는 발행, 출판, 출시라는 이벤트가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더해진 관점이 있다면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 정도다. 다시 말해, 한번 만들어진 콘텐츠를 기반으로 어떻게 수입원을 다각화할 것이냐는 문제다. 캐릭터 상품은 만화로, 영화로, 소설로, 교재로 만들어서 출시하고 출판하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한 최종 단계였다.

그러나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기존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점에 해당한다. 사용자가 참여하는 과정이 가치를 만들고 돈이 되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참여해야 콘텐츠에 생명이 생기고 가치가 새롭게 부여된다. 사용자가 참여하지 않는 콘텐츠는 사망한다. 모든 콘텐츠의 기준가가 공짜가 되는 세상에서[1] 참여 없이 바로 사망한 콘텐츠에게 누가 돈을 지불하겠는가.

여기서 참여란 콘텐츠와 관련된 사용자의 모든 활동을 말한다. 무슨 음악을 듣고 있는지 지인들에게 플레이 리스트를 공개하고, 슬라이드셰어(Slideshare(http://www.slideshare.net))에서 무슨 문서를 저장했는지 공유하고, 댓글을 달고 리뷰를 하는 이른바 모든 매개 행위다. 자신이 읽고 보고 듣고 사고 먹은 것과 지인들을 연결하고, 또는 그 콘텐츠들을 다른 콘텐츠들과 연결하는 행위다.

이것은 콘텐츠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매개가 콘텐츠의 생산, 유통, 소비의 선형적 가치 사슬의 역할을 대체하게 되면서 문제의 핵심이 콘텐츠의 발달, 진화, 소멸 과정으로 옮겨 가게 된 것이다. 여기서 콘텐츠의 가치는 미리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매개 과정 즉 공유, 기록, 링크, 댓글 등을 통해 멀리 퍼지고 생명력을 부여받을수록 높아진다.

2. 매개가 가치를 결정하는 사례

‘서치메트릭스(Searchmetrics)’의 2012년 자료에 따르면, 구글의 페이지랭크 알고리즘도 문서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사용자의 참여를 중요한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2] 예를 들어, 이제 특정 페이지의 백링크보다 페이스북의 공유 숫자가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난 2011년 9월 블로터닷넷에서는 기사의 생명력이 얼마나 지속되는지를 리트윗 횟수 등을 통해 분석한 바 있다.[3] 조사에 따르면 블로터닷넷 기사의 평균수명은 16.6일로, 경쟁 언론사들에 비해 높은 생명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직접 인용하고 링크하고 리트윗하는 기사는 살아 있다. 제목만 바꿔가며 네이버 메인에 노출되기 위해 양적으로 반복되는 ‘낚시성’ 기사와 상반된 운명일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 트위터의 리트윗 횟수가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그 자체로도 이슈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규모가 가치를 만드는 경우다. 리트윗한 사람들은 버튼 한 번 눌렀을 뿐이지만 그 참여가 연결을 낳고 그 연결이 네트워크 전체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2012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리트윗된 글은 ‘4년 더(Four more years)’라는 버락 오바마의 재선 자축 글이었다. 이 글은 80만 회 넘게 리트윗되었으며 함께 게재된 사진과 함께 그 자체로 이슈가 되었다.[4]

'Four more Years': 2013년 2월 현재까지 가장 많이 리트윗된 사례.

‘Four more Years’: 2014년 2월 현재까지 가장 많이 리트윗된 사례다.

사업자와 사용자의 역할이 뒤바뀐다

이것이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네트워크에 기반한 미디어 현상이다. 그동안 끝이었던 단계가 이제 시작점으로 이동함에 따라 사업자의 역할도, 가치가 생산되는 과정도 뒤바뀌게 되었다. 콘텐츠의 가치가 공급과 함께 결정되지 않고 진화, 발달, 성장, 소멸 과정을 통해 사후에 결정된다면 그 누구도 혼자서는 콘텐츠의 가치를 단정 지을 수도, 그 성장 과정을 통제할 수도 없다. 콘텐츠를 확산하고 진화시키는 라이프 사이클은 사업자, 유통사, 콘텐츠 제공자가 독립적으로 만들 수 없다. 텍스트 기반 콘텐츠라고 한다면 ‘읽기(Readership)’에서 ‘매개할 만한(mediat-able’)으로 중심축이 이동된 것이다. 사업자와 사용자의 역할이 뒤바뀌게 되는 대목이다.

이제 사업자(콘텐츠 제공자, 유통사, 광고주 등)는 공급자가 아니라 조력자다. 사용자가 쉽고 편리하게 콘텐츠를 매개하고 진화시키도록 해야 한다. 원래는 공급자인데 조금은 조력자 역할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철저하게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사용자를 돕기 위해서는 사용자를 직접 만나야 하고 체험해야 하며 무엇을 도울지 알아야 한다. 단순 공급자에서 멀티 플레이를 하는 매개자로 변화해야 한다. 이 과정이 콘텐츠를 공급하기까지의 과정보다 더 지루하고 어려울 것이다. 체험과 배움과 관리가 끝도 없이 지속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수많은 인터넷 서비스들이 한때 돌풍을 일으켰다가 소멸되는 것을 보았고, 수많은 이슈와 약속들이 쉽게 일어났다가 쉽게 부서지는 것을 목격해왔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는 끝이 곧 시작이라는 말이 모든 영역에 적용된다. 모든 서비스, 모든 콘텐츠, 모든 관계는 매개되지 않으면 도태된다. 매개만이 지속적인 성장을 만든다고 하겠다.

이 책은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독자가 계속 참고하고 공유하고 되새기는 책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의 출판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되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종이책 출판마저 과정의 끝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매개 활동 중 하나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독자와의 상호작용, 독자들의 매개 행위, 그것을 바탕으로 콘텐츠는 지속적으로 진화해야만 한다. 진화만이 죽지 않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콘텐츠의 생명력 관점에서 사용자의 매개 활동이 콘텐츠의 본질을 어떻게 바꾸는지, 그것이 미디어 질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살펴보았다. 매개는 여러 글에서 다양하게 다루어졌다. ‘관계’가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라면, ‘매개’는 관계를 만드는 프로세스이자 체험이다. 여기서는 다음 세 가지를 환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 첫째, 오가닉 미디어에서 콘텐츠는 성장한다.
  • 둘째, 성장은 사용자의 매개 행위가 만든다.
  • 셋째, 매개 행위는 미디어 질서를 재구성한다(끝이 곧 시작이다).

<갈림 길>


  1. 노상규, "정보는 공짜가 되기를 바란다 (Information Wants To Be Free)," Organic Media Lab, Apr 4, 2013, http://organicmedialab.com/2013/04/04/information-wants-to-be-free/, [Accessed on Oct 1, 2013].
  2. Searchmetrics, Google Ranking Factors U.S. 2012, http://www.searchmetrics.com/en/white-paper/google-ranking-factors-us-2012/, [Accessed on Oct 1, 2013].
  3. 이지영, "[블로터5th] 트위터 '1등 언론' 조사해보니," 블로터닷넷, Sep 5, 2011, http://www.bloter.net/archives/74497, [Accessed on Oct 1, 2013].
  4. Stan Schroeder, "Obama's 'Four More Years' Tweet is Most Popular of All Time [REPORT]," Mashable, Nov 7, 2012, http://mashable.com/2012/11/07/obama-four-more-years-tw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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