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은 곧 매개다

Publication is Mediation

요즘은 글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시간이 없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까지 13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다는데, 지금은 13개월은커녕 1분 30초 만에도 글이 쏟아져 나온다.[1]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 하나, 트위터에 쓰는 140자의 글, 친구가 추천한 블로그, 친구가 카카오톡으로 보내준 링크들이다. 모두 따라가서 읽다 보면 하루가 모자란다. 어차피 내일 읽을거리는 또 쏟아질 것이다.

혹시 소셜 미디어의 시시콜콜한 잡담까지 고귀한 출판과 비교해서 기분 나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도 대부분 출판이란 책, 저널 등을 발표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당연하다. 출판의 개념은 지금까지 (신문, 잡지, 책 등의) 전통적인 미디어와 함께 해오면서 역사적으로 정립된 것이다. 공중에게 전달하기 전에 출판사, 논문집, 신문사에서 내용을 검열·편집하고 충분히 다듬어서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후에 독자에게 공개했다. 출판은 태생적으로 ‘공개할 만한’이라는 의미를 함축해왔다.

그런데 이제 블로그에서 글 하나를 공개할 때도 ‘퍼블리시(publish)’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사전적으로도 출판은 ‘공중(general public)에게 콘텐츠를 공개(make available, rendre public)하는 모든 행위’로 정의되어 있다.[2] 사진을 찍어서 누구에게 공개할 것인지 선택하고 실시간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것은 왜 출판이 아닌가?

미디어 시장이 진화하면서 출판의 쟁점도 변화하고 있다. 이 단락에서는 출판을 재정의하고 진화하는 출판의 가치를 논의할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일생일대의 이벤트였던 출판이 일상화되고 습관화되는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서 출판의 역할과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만 그것을 인지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출판의 고정관념을 깨기 위한 몇가지 질문

다음 이미지는 ‘플립보드(Flipboard)’ 서비스가 제공한  1면 기사의 제목들이다.[3] 플립보드는 전문적인 언론사가 제공하는 기사와 소셜 미디어에 공유된 지인의 콘텐츠를 조합하여 공적·사적 메시지의 구분 없이 보여주는 소셜 매거진이다. 각자가 설정해놓은 내용을 하나의 채널을 통해 매거진으로 받아 본다.

소셜 매거진 서비스 '플립보드(Flipboard)'에서 신문 기사, 소셜미디어 등의 콘텐츠를 큐레이션하여 매거진처럼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소셜 네트워크와 사용자 활동을 기반으로 커버스토리를 추천한다.

소셜 매거진 서비스 ‘플립보드(Flipboard)’에서 신문 기사, 소셜미디어 등의 콘텐츠를 큐레이션하여 매거진처럼 볼 수 있다. 사용자의 소셜 네트워크와 사용자 활동을 기반으로 커버스토리를 추천한다.

플립보드에서는 사용자의 네트워크와 활동 등을 기반으로 쏟아지는 출판물 중에서 무엇을 먼저 보여주고, 무엇을 중요하게 전달해야 할지 구성한다. 상단의 커버스토리를 차지한 지인의 사진 한 장과 하단에 있는 뉴스 콘텐츠는 이렇게 배달된 콘텐츠들이다. 이 중 어느 것이 출판물이고 어느 것이 출판물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물론 전통적인 출판 시장에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인 출판 시대에는 스스로가 편집자고 검열자다. 아마존에서 전자책을 출판하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것도 저자가 직접 올리면 된다. 웹북은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다음 이미지는 여러분이 지금 읽고 있는 책 《오가닉 미디어》의 웹북 표지다. 저자가 직접 웹 서비스를 이용해 만든 것이다. 종이책이 출판되기 전에 수업 시간에 활용하기 위해 웹북을 만들고, 일부를 학생들에게 공개했다. 여러분이 책을 읽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내용은 계속 수정되고 있다. 이 웹북은 출판인가 아닌가?

누구나 쉽게 웹북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화면은 '오가닉 미디어'의 웹북 초기 화면이다. (출처: organicmedia.pressbooks.com)

누구나 쉽게 웹북을 출판할 수 있게 되었다. 화면은 ‘오가닉 미디어’의 웹북 초기 화면이다. (출처: organicmedia.pressbooks.com)

만약 책 전체를 웹에 올리지 않고 한 장(章)만 공개했다면, 이것은 또 출판인가 아닌가? 1부의 ‘책의 진화인가, 종말인가?’에서도 언급했듯이, 전통적으로 책이 되려면 어느 정도 두께의 페이지가 필요했고(유네스코에서는 49쪽으로 규정했다), 책이란 홍보물을 제외하고 서점 등의 채널을 통해 배포되는 것을 일컬어왔다. 하지만 이미 2쪽짜리 전자책도 출판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다음 이미지와 같은 웹북 형태에서는 아예 페이지 개념이 없다. 심지어 장(章) 하나만 무료로 웹에서 공개한다면, 그것은 출판이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이 책의 1부 1장 '책의 종말인가, 진화인가?'의 이미지를 캡처한 것이다. 이것은 출판인가, 아닌가?

이 책의 1부 1장 ‘책의 종말인가, 진화인가?’의 이미지를 캡처한 것이다. 이것은 출판인가, 아닌가?

일상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된 출판

자신의 콘텐츠를 각종 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는 행위가 출판이라면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상관이 없고 심지어 소셜 미디어에서도 출판은 이루어질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도, 얼마나 깊이 있고 길이가 긴 스토리인지도 상관이 없다. 콘텐츠를 공개할 만한 미디어가 희귀할 때는 ‘공개할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프로세스도 엄격하고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콘텐츠도 많고 공개할 미디어도 수없이 많아졌으며 무엇보다 누구든지 접근 가능해졌다. 출판사와 편집자를 통하지 않고도, 나의 이야기를 공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실제로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의 생각을, 일상을 기록하고 공개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출판의 연속이다. 지금 무엇을 보는지, 먹는지, 생각하는지, 이 모든 것이 공개할 거리가 되었다. 즉 출판은 대단한 인지적 행위가 아니라 직관적이고 충동적인 콘텐츠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이제 나의 체험과 생각을 공개하는 행위가 내가 누구인지 알리고 사회적으로 나를 존재하게 하는 수단이다.

여기서 출판은 반드시 여러분이 혼자서 창조적으로 작성한 콘텐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글을 리트윗하고 공유하고 싶은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행위 등이 여러분의 네트워크에 공개된다면, 이것도 모두 출판의 범주에 속한다. 작성하고 인용하고 좋아하고 댓글을 다는 모든 행위가 반복되고 연결된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일대기를 적은 장편소설이 될 것이다. 한 번에 출판한 자서전이 아닐 뿐이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여러 콘텐츠를 모으는 ‘큐레이션(Curation)’도 출판이다. 남이 생성한 글을 여러 개 모아서 보여주는 것은 최초 창작물과 ‘글쓰기 방법’만 다를 뿐이지 출판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러분의 검색 기록을 구글이 콘텐츠 필터링에 사용하고 있다면(그래서 검색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면), 여러분의 검색 기록을 담은 단 한 줄의 메타 데이터도 결국 간접적으로 출판의 일부가 된다(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출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출판이란 더 이상 전문적인 지식을 가졌거나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필수가 되어버린 소통 수단이고 존재 방식이다. 문득 페이스북의 뉴스피드에서 한 장의 사진과 지인의 생각 한 줄이 여러분의 시선을 붙들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성공한 출판물이고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사진 한장과 한줄의 콘텐츠도 출판의 일종이다.

페이스북에 지인이 올린 사진 한장과 한줄의 콘텐츠도 출판의 일종이다.

출판의 미션은 매개(Mediation)다

모두가 출판하고 무엇이든 출판되는 환경이 되었다면 앞으로 출판의 역할은 무엇이며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인가? 앞으로 오가닉 미디어 시장에서 출판의 역할과 가치는 ‘전달’이 아니라 ‘매개’가 될 것이다(매개에 대한 상세한 정의는 4부의 ‘매개의 4가지 유형: 창조, 재창조, 복제, 그리고 소비’를 참고하기 바란다).

매개의 방식은 다양하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콘텐츠를 공개하든 이미 공개된 콘텐츠를 추천하든 상관이 없다. 독자와 지식을 연결해줄 수도 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오가닉 미디어에서 우리의 모든 행위가 출판 행위가 된다는 점, 그리고 모든 출판 행위는 다시 무언가를 ‘매개’하는 행위가 된다는 점이다.

출판이 매개가 되고 매개가 곧 출판이 되는 과정은 전에 없던 결과물을 만들었다. 출판은 저자, 독자, 콘텐츠 등이 다양하게 연결된 ‘관계’를 만들며, 이 관계가 만드는 네트워크가 결과적으로 출판의 가치가 된다. 사업자 관점에서 보면 출판도 더 이상 콘텐츠 비즈니스가 아니라 네트워크 비즈니스로 진화한다는 뜻이다.

매개는 네트워크를 만든다

매개 행위가 무엇이든 여러분의 활동 기록은 고스란히 지인들에게 공개되고 배달되어 하나의 출판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예외 없이 콘텐츠와 지인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고, 이 과정은 네트워크를 만들게 될 것이다.

다음 이미지는 이러한 출판, 즉 매개 행위로 형성된 네트워크를 도식화한 것이다. 블로그에 어떤 글이 게재되었다고 생각해보자. 이렇게 생성된 콘텐츠를 C1이라고 하자. 이 글을 읽은 사람이 자신의 페이스북으로 글을 링크시키고 코멘트를 단다. C1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콘텐츠 C2가 생성된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클릭 한 번으로 링크를 자신의 트위터로 보낸다. C3 콘텐츠가 생성된다. 이 모든 행위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의 사람들과 최초의 콘텐츠 생성자를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용자의 모든 종류의 퍼블리케이션 행위(댓글을 달다, 좋아하다, 공유하다, 검색하다 등)는 연결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연결은 사용자와 콘텐츠(메시지)를 매개하고 이종의 네트워크(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를 매개하는 결과를 낳는다.

사용자의 모든 종류의(댓글을 달고, 좋아하고, 공유하고, 검색하는 등의) 출판 행위는 연결을 만들고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 연결은 사용자와 콘텐츠(메시지)를 매개하고 이종의 네트워크(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를 매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행위들(링크)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가 사람 또는 콘텐츠를 매개하는 역할을 양방향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결을 하는 순간 스스로도 연결된다. 결과적으로는 C1, C2, C3의 콘텐츠를 게재한 이들이 모두 스스로 노드가 되었고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자가 되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출판이 그 내용과 형식에 관계없이 모두 매개 행위라고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 이유이며, 그 결과 출판 행위가 수많은 ‘관계’를 생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매개가 공간을 확장시킨다

매개는 하나의 서비스 공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서비스와 연결되면서 거대한 관계 네트워크로 확장될 수 있다. 콘텐츠와 사람, 사람과 사람 간의 네트워크가 유기적으로 변모하게 되고 다양한 노드들이 생성·진화·소멸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콘텐츠(출판물)는 진화하기도 하고, 사용자의 매개가 멈춰진 곳에서 바로 사망하기도 한다. 각각의 현상들은 독자적인 네트워크 안에 갇혀 있지 않고 서로 연계되어 확산된다.

사용자의 매개 행위로 이어진 네트워크를 공간적으로 다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사용자는 서비스 영역에 관계없이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뉴스 등을 옮겨 다닌다. 콘텐츠들로 매개된 사용자들이 연결되고 사용자의 활동 영역만큼 공간은 확장된다. 사용자가 자유롭게 서비스를 여행하면서 활동하는(흔적을 남기는) 거리만큼 출판물이 유통되는 공간도 확장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소셜 미디어에 게재된 한 줄의 링크든 신문 기사든, 어떤 콘텐츠든 사용자가 자유롭게 넘나들며 쉽게 매개할 수 있는 환경뿐이다.

사용자의 활동을 통해 콘텐츠들이 서로 매개되고 사용자들이 서로 연결된다. 사용자가 활동한(매개한) 거리만큼 공간은 확장되어 있다.

사용자의 활동을 통해 콘텐츠들이 서로 매개되고, 사용자들이 서로 연결된다. 사용자가 활동한(매개한) 거리만큼 공간은 확장되어 있다.

네트워크를 공간 형태로 바꾸어 살펴보면 최초로 생성된 콘텐츠(메시지 C1)를 매개하는 행위를 통해 C1과 연관된 새로운 콘텐츠들이 생겨나는 것을 볼 수 있다(C2, C3, …… Cn). 여기서 C2, C3의 콘텐츠 생성자들은 단순히 자신의 지인들과 의사소통하기 위해 글도 올리고 링크도 내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와 소셜 그룹들을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결과까지 가져온다. 곧 콘텐츠(노드)에 매개된 소셜 네트워크의 확장이며, 궁극에는 콘텐츠와 사람의 연결이 ‘공간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렇게 거대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결국 보잘것없고 시시한 출판물의 조각들이다. 모든 흔적이 기록되고 연결되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의 출판 행위가 지금까지 오가닉 미디어를 진화시키고 공간을 확장하는 원동력이 되어온 것이다.

지금까지 매개 관점에서 진화하는 출판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다. 출판 즉 콘텐츠(메시지)를 공개하는 행위가 결국 일방적인 ‘전달’에서 양방향 ‘매개’로 페이지를 넘겼다는 것은 미디어 시장 전체에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사용자의 매개 활동을 중심으로 미디어의 질서가 재편된다는 점, 둘째, 출판(방송, 음악 등 콘텐츠를 공개하는 모든 행위로 읽어도 무방하다)이 고귀했던 시절보다 출판의 가치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는 점이다. 예전의 출판이 한 사람의 전유물이고 고립된 섬이었다면 지금은 무언가를 연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하는 매개체로 확장되었다. 이것은 오랫동안 시장을 주도해왔으면서도 벼랑 끝에 몰리게 된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주어진 시작점이다. 새로운 기회다. 모두가 1인 미디어가 되고 1인 출판사가 되는 시대에 출판(콘텐츠) 시장의 범위는 훨씬 넓어질 것이고 사업자의 역할은 진화할 것이다. 다만 ‘책으로(미디어로) 공개할 만한 콘텐츠를 판단하고 생산하는’ 것에 사업자의 역할을 국한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갈래 길>


  1. John van Wyhe, "Alfred Russel Wallace. A biographical sketch," Wallace Online, 2012, http://wallace-online.org/Wallace-Bio-Sketch_John_van_Wyhe.html, [Accessed on Oct 1, 2013].
  2. "Publication,"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Publication, [Accessed on Oct 1, 2013].
  3. 김광현, "플립보드에서 한국 뉴스를 매거진 형태로 본다," 한경닷컴 블로그, Jul 23, 2013, http://kwang82.hankyung.com/2013/07/blog-post_23.html, [Accessed on Oct 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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