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가 공간이다

Network Replaces Space

이 제목을 보면 공간 이론을 정립한 수많은 사상가들이 무덤 속에서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이 글은 공간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공간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우리의 사고 체계에 대한 글이다. 이 글에서 나는 인터넷 시장에서만큼은 기존의 물리적 공간 개념은 제발 잊으라고 부탁할 것이다.

우리의 사고 체계를 만들어온 공간은 미디어 개념과 합체되면서 지금까지 사고를 지배해왔다. 그런데 미디어가, 시장이, 사회가 바뀌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고하는 방식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야 ‘20~30대 남성 타깃’ 같은 막연한 시장 전략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래야 메시지의 양적인 전달보다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 활동을 고려한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이것은 동네 채소 가게에서 전단지를 뿌리는 대신 십년지기 단골과 친구처럼 대화하고 원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 것과도 같다. 다른 것이 있다면 온라인에서는 고객과의 대화가 모두 기록으로 남아 무수한 연결(link)로 이어지고, 그 연결이 새로운 스토리를 펼치게 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그 스토리의 결과가 네트워크이며 곧 공간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에 대한 오해와 실수

연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공간이 어떻게 변모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잘못된 전제로 시행착오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공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인터넷 시장을 이해하는 열쇠이자 길잡이다. 이때 공간은 현실과 분리된 가상의 공간도 아니고 장소에 국한된 공간도 아니다. 사용자의 매개 활동이 만드는,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되고 변화무쌍한 공간이다. 그러나 이 변화를 이해하지 못한 기업들의 시행착오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예를 들면 소셜 커머스에서 반값 할인 행사를 진행했던 업체들이 예상하지 못한 역효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례들을 흔히 볼 수 있다.[1] 여러 이유로 행사의 흔적을 나중에 지우고 싶더라도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서 데이터를 지워준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셜 커머스는 그 자체로 물리적인 장터인 한편 SNS를 통해 사용자 간 입소문과 공유, 참여를 수월하게 유도하기 위한 서비스다. 사용자들의 참여를 전제로 하다 보니 여행사, 마시지숍, 식당에서 반값 할인을 한다는 소식은 소셜 커머스 사이트에만 머물러 있지 않는다. 소셜 커머스의 특성상 단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야 하므로 참여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 메시지를 알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소비자들이 네트워크에서 메시지를 게재하고 퍼뜨리는 만큼 공간이 생겨나고 확장된다. 사업자가 정해놓은 사이트가 공간이 아니라 사용자가 활동하는 범위가 공간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 효과가 빠르고 확실한 만큼 단점도 확실하다는 것이다. 인터넷에서는 모든 행위가 어딘가에 로그로 남게 되어 있는데, 소셜 커머스 역시 마찬가지다. 반값 행사를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은 업체들의 요청에 따라 소셜 커머스 회사에서 그 이력을 삭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인터넷에 퍼져 있는 수많은 로그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 나간 뒤이고, 그만큼 삭제해야 할 공간도 늘어난 셈이다. 사용자들이 공유한 링크와 블로그 게시 글, 댓글들을 어떻게 모두 삭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내용들은 고스란히 검색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기존에 미디어의 역사가 쌓아온 공간 인식에 대한 완전한 해체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새로운 현상에 대응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확성기를 통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미디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공간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제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상’에서 공간의 성격과 구조가 어떻게 바뀌어가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공간 개념에 대한 철저한 해체가 필요하다

미디어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류의 욕구와 함께 해왔다. 공간이란 우리가 상호작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환경이며, 인간에게 존재를 확인해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특정 사회가 경험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구조 속에서 필연적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다.[2]

이런 공간의 개념이 크게 변하고 있다. 어디든지 쉽게 여행 다니고 지구가 글로벌화되고 서로 가까워졌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원거리에서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서 가족들과 화상통화를 하고 미국에서 오늘 출판된 책을 한국에서 바로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들이 공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관점에서 본 미디어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물리적 공간 개념 자체가 해체되고 새롭게 구성되는 현상이다. 이제 콘텐츠를 연결하고 공유하고 확산하는 네트워크가, 사람을 모으고 제품을 진열하고 메시지(콘텐츠)를 전달해온 공간을 대체하고 있다.

네트워크는 각각의 노드와 링크의 합이다. 여기서는 노드가 누구이고 무엇이며,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떤 상관관계를 지니는지 밝혀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데이터 분석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것도 공간 중심에서 네트워크 중심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상이다.

에릭 시겔(Eric Siegel)은 《예측 분석(Predictive Analytics)》에서 미국 대통령 버락 오바마가 어떻게 2012년 재선에서 승리했는지를 데이터 관점에서 설명한 바 있다. 유권자 개인의 사소한 행동과 성향, 가족 관계 등 모든 것이 하나같이 분석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그저 20대 대학생 그룹으로 명명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의 고유한 노드로 작용했다.[3]

버락 오바마가 소셜 미디어를 활용한 전략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선거에 이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왜 유독 오바마의 경우 성공 사례로 연구되는 것일까? 오바마 캠프는 소셜 미디어를 메시지를 많이 전파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지지자들이 스스로 온·오프라인의 네트워크가 되어 점조직처럼 움직이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4]

네트워크 노드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경우에는 지지자들이 직접 참여하고 알리고 주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오히려 중요해진다. 바로 이것이 홍보 사이트와 다른 점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지층을 막연히 ’20대, 30대 남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원시적이며 엄청난 실수를 범하게 되는 지름길이다. 공간 관점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많이 보여주는 것은 점점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공간 관점과 네트워크 관점의 실행전략 비교

공간 관점과 네트워크 관점의 실행전략 비교

공간과 네트워크 관점을 비교해보면 타깃 설정 방법, 실행 프로세스, 목표(성공 지표) 측면에서 차이점을 정리해볼 수 있다. 우선 공간 관점에서 보면 전략은 ‘모으다’에 집중된다. 공간 개념이 형성하는 고정관념의 범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타깃 그룹을 한 공간에 모은다는 발상에서 출발하면 설득해야 할 대상은 막연히 대중 또는 인구통계학적 그룹이 된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우선 모으는 작업(aggregation)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전략 목표는 메시지 도달률이 될 것이다.

반대로 네트워크 관점에서 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고객 한 사람 한 사람이 설득해야 할 대상이다. 이들은 한 장소에 모아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메시지 전달보다 중요한 것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메시지를 접촉하고서 하게 되는 각각의 다양한 ‘매개’ 행동들이다. 즉 공간의 경우 양적인 도달까지가 중요하다면 이 경우는 오히려 그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메시지를 공유하고 연결하고, 제품을 추천하고 평가하고, ‘좋다’ ‘싫다’ 표현하는 등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메시지를 ‘연결’하는 행위가 일어나는 단계다.

이때 전략 목표는 매개에 기반한 확산이 된다. 에버렛 로저스가 ‘혁신의 확산(Diffusion of innovations)’ 이론에서 주장했듯이,[5] 확산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매개자 스스로 새로운 메시지를 검증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고객이 실제로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설득되어야만 확산이 가능한 것이다. 고객이 매개한다는 것은 곧 공감했다는 뜻이며, 중간 과정에서 어떤 방식으로 확산이 이루어지는지 분석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니 네트워크 관점에서는 고객에 대한 분석이 훨씬 더 복잡하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은 쉽게 깰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실제로 나를 비롯한 많은 사업자들이 여전히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먼저 인지하고 서비스를 시작하더라도 대부분은 막연히 ‘이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필요할 거야’라는 전제에서 출발하곤 한다. 그리고 서비스를 먼저 만들어놓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런 거 필요하셨죠? 이제 여기 와서 노세요, 쓰세요’ 하면서 홍보하고 고객을 기다린다. 결과는 대부분 참담하다. 자신이 미리 설계해놓은 놀이터에 사람들을 모으려 하는 전략 자체가 기존의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범하는 실수다. 공간이란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기준 같은 것이어서 이 엄청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공간을 아예 잊고 네트워크 중심으로 전략적 사고를 옮겨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작은 경험들을 반복하고 지속적으로 체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에릭 리스(Eric Ries)가 《린 스타트업(The Lean Startup)》에서 강조했듯이,[6] ‘만들고(build) 측정하고(measure) 배우는(learn)’ 프로세스를 짧게 여러 번 반복할 수밖에 없다. 더디게 가는 것이 아니다. 탁상공론하면서 전략을 짤 시간에 작지만 빠르게 실행을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실험을 거듭하면서 하나씩 수정하고 조금씩 체화하면서 나아가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시장에서 진화에 성공하는 단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는 거대한 한 방이 아니라 작은 조각들의 연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갈림 길>


  1. 정보라, "'할인 흔적 지워주오'…소셜쇼핑의 딜레마," 블로터닷넷, Jan 9, 2013, http://www.bloter.net/archives/139852.
  2. Michel Foucault, "Des espaces autres," Architecture/Mouvement/Continuité, Oct 1984; Gaston Bachelard, La poésie de l'espace, 1958.
  3. Eric Siegel, Predictive Analytics: The Power to Predict Who Will Click, Buy, Lie, or Die, Wiley, 2013.
  4. 손재권, "오바마처럼 승리하라(1)," 손재권기자의 점선잇기, Jan 24, 2013, http://jackay21c.blogspot.kr/2013/01/1.html, [Accessed on Oct 1, 2013].
  5. Everett M. Rogers, Diffusion of Innovations, 5th ed., Free Press, 2003.
  6. Eric Ries, The Lean Startup: How Today's Entrepreneurs Use Continuous Innovation to Create Radically Successful Businesses, Crown Busine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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