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이 나를 정의한다

My Audience Define Who I am

앞선 두 개의 글에서 사용자 정체성을 형성하는 네 요소에 대해 설명했다. 동일시와 차별화, 그리고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다. 이 단락에서는 사용자 정체성을 청중(audience) 관점에서 논의하려고 한다.

소셜 미디어를 즐겨 사용하는 독자라면 ‘소셜 미디어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 ‘청중과 나의 관계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청중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등을 궁금해했을 것이다. 이 글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이 될 것이다

사용자 정체성의 4가지 요소

아래의 도식은 매클루언이 ‘미디어의 법칙’에서 제시한 테트라드(Tetrad)를 응용한 것이다(매클루언의 작업에 대한 오마주(hommage)이기도 하다).[1] 각 요소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지만 어느 한 요소가 원인이나 결과가 되지 않는다. 시작과 끝이 따로 없다. 그 대신 네 요소의 작용은 동시다발적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용자 정체성에 필수적인 4개 요소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작용하는 관계에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lawsofmedia.come/lawsofmedia.html)

사용자 정체성에 필수적인 네 요소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작용하는 관계에 있다. (이미지 출처: http://www.lawsofmedia.com/lawsofmedia.html)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테트라드가 성립될 수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공적 영역과 분리되어야만 사적 영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서로에 대한 단절이 서로를 존재하게 했다. 그러나 더 이상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나가 공존한다. 구분이 없어졌을 뿐 아니라 ‘공생’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 것이다.

동일시와 차별화는 공적인 나와 사적인 나를 동시에 형성하는 요소다. 공적인 장소에서는 차별화만 일어나고 사적인 장소에서는 동일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우리 모두는 차별화와 동일시의 끊임없는 동시 작용으로 살아간다. 특히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공존하는 소셜 미디어에서는 더욱 그렇다. 동일시, 차별화, 공적인 나, 사적인 나의 작용은 끊임없는 화학작용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일련의 과정을 날마다 오가닉 미디어를 통해 체험하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나의 정체성 찾기

나는 이 책을 집필하기 위해 페이스북을 이용했다. 오가닉미디어랩 블로그에 콘텐츠를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글을 알리고 공유하는 채널로 페이스북을 활용했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과 연결되었다. 그 과정은 매우 흥미로운 스토리가 되었다.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네 요소가 어떻게 동시에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청중에 대한 이야기다.

1. 나의 모습을 드러내다

제일 먼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해왔고 현재 무엇을 하는 누구인지 프로필을 업데이트했다. 사적인 나를 공적인 공간에 드러냄으로써 정체성 만들기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자주 드나들면서 글을 올리고 다른 글에도 반응하면서 소통을 시작했다.

내가 올린 글을 모두 합치면 관심사를 쉽게 추정할 수 있다. 특히 블로그에서 작성한 글을 주로 공유하고 있으니 더욱 그럴 것이다. 기존에 간과되었거나 사람들이 실행에 바쁘다는 이유로 멈춰 서서 보지 못했던 주요 과제들을 먼저 다루었다. 배우고 경험한 것을 나눈다는 사명감 뒤에는 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요구도 컸을 것이다.

동일시 활동도 병행되었다. 뉴스피드에서 무릎을 탁 칠 만큼 좋은 글이 있으면 ‘좋아요’를 누른다. 혼자 읽기 아까운 글은 공유하기도 한다. 공유는 ‘좋아요’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참여적인 행위로, 강력한 공감이다.[2] 가시적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내 자신을 타인의 판단에 맡기는 행위다.[3] 이때 타인이 나를 판단하려면 기준이 필요하다. 어떤 내용에 공감하고 누구와 동일시하는지 지속적으로 드러내다 보면 기준이 만들어진다. 글을 올리면서 차별화와 동일시를 꾀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나를 판단할 때 근거로 삼을 기준이 하나씩 만들어졌다.

2. 친구들이 나를 판단하다

그렇게 미디어의 개념화 작업을 반복했는데, 차별화에 대한 노력은 사람들의 피드백으로 돌아왔다. 친구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오가닉미디어랩의 블로그를 보고 왔다고 했다. 그와 동시에 블로그에 올린 글에 대한 사람들의 피드백이 내게는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지표가 되었다. 바로 블로그가 페이스북의 공간과 연결되는 과정이었다.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이 서로에 대한 판단도, 상호 관계도 없이 온전히 개인적인 것으로 끝난다면, 세상에는 서로 완전히 분리된 개체만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차별화를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누적되면 기존에 존재하던(혹은 새롭게 생성되고 있는) 집단과 동일시가 일어난다. ‘이런 사람’으로 그룹화(grouping)되는 것이다.

주제나 스타일은 사용자별로 매우 다르겠지만 과정은 동일하다. 줄기차게 ‘먹방’ 글을 올리는 사람, 유머를 공유하는 사람, 속보를 전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이처럼 나도 어떤 유형에 소속되고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이런 글쓰기를 계속한다면 특정 집단과 더 분명한 동일시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반대로 더욱 분명한 차별화가 나타날 것이다.

필자의 뉴스피드에서 줄기차게 음식 사진을 올리는 지인의 포스트는 그 히스토리가 쌓여 이제는 반가운 웃음코드가 되었다

내 뉴스피드에 줄기차게 음식 사진을 올리는 지인의 포스트는 그 히스토리가 쌓여 이제는 반가운 웃음코드가 되었다

물론 나도 동시에 타인을 판단하는 입장이 되었다. 뉴스피드를 계속 받다 보니 저널리즘의 돌파구를 찾는 집단, 벤처 생태계를 만드는 집단, 데이터를 공유하는 집단 등 구분이 점차 명확해졌다. 처음에는 지인 몇몇에서 출발했다. 이들이 공유하는 콘텐츠를 찾아가서 읽다 보니 저자를 만나게 되고 친구도 맺었다. 그리고 그 분야의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내게로 왔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 아는 사람들이다. 공동 친구(mutual friends)의 수가 점차 늘어 30~40명씩 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서로 차별화되면서도 유사한 집단들의 합이 현재 내 친구 리스트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집단과의 차별화와 동일시는 동시에 일어난다. 특정 집단과의 동일시 과정은 다른 집단과의 차별화를 뜻한다. 시간이 흘러 특정 집단에 동일시가 뚜렷해지면 즉 ‘아무개는 A그룹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으면 그때부터는 거꾸로 A그룹의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시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동일시와 차별화가 역동성을 잃으면 프로세스도 중단된다. 나의 성장과 도태는 동일시와 차별화 작용이 누적되면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나와 소통하는 집단에는 사적인 관계도 있다. 프로필을 페이스북에 노출함으로써 사적인 나는 공적인 나와 공존을 선언했다. 또 전공 분야의 글을 올리면서 뜻밖에도 나의 사적 네트워크의 사람들과 더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모습을 자꾸 드러내다 보니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람들과 대화하는 일도 많아졌다. 메신저 이용도 늘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공존하는 네트워크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청중(Audience)이 나를 정의한다

지금까지 페이스북에 나를 드러내는 활동과 그에 따른 피드백 프로세스를 설명했다. 결국 정체성을 위한 이 모든 과정에서 나를 정의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그렇다. 내가 아니다. 정체성은 임의로 정해지지 않는다. 오로지 ‘청중(audience)’을 통해서만 정의된다.[4] 프로필 페이지에 나를 드러낸다고 해서 청중이 생기지는 않는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데 글을 계속 올린다면 그것도 정체성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이벤트 마케팅을 기반으로 상호작용이 일어나더라도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사람들이 내 얘기를 들어주고 반응하는 과정이 반복될 때 정체성이 형성된다. 비로소 청중이 생기기 때문이다. 청중으로 식별되는 특정한 집단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5]

청중이 평가하는 나는 누구인가? 다시 말해, ‘누가’ 나의 청중인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들이 모인 집단의 속성이 나를 결정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는 단순히 청중의 규모가 아니라 청중과 우리의 관계다. 청중으로 식별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누구이고, 나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가 나를 말해준다. 오가닉 미디어에서 청중이란 차별화와 동일시, 사적인 나와 공적인 나의 동시 작용의 결과이며, ‘가시적으로’ 생산되고 측정이 가능한 집단이다.

그렇다면 정체성을 요리하는 과정에서 네 요소는 상호작용을 하지만 정체성은 직접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내 정체성을 내가 직접 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 대신 청중을 생산하고 이 청중이 모여 나를 정의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내 청중도 미리 정해지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청중은 나날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만들어지는 한 명 한 명의 합이다. 이들을 통해 내가 정의되고 수정되고 진화한다.

내가 올린 글 하나하나, 그리고 상호작용 하나하나의 과정에 청중은 끝없이 구체화된다. 그들의 나에 대한 판단도 구체화되며, 나의 차별점과 유사점도 구체화된다. 타깃이 청중이 되고 네트워크로 자라나는 과정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는 멋지고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이 오가닉 미디어에서 청중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쩌면 시시하고 보잘것없는 소통의 반복이다. 하지만 그 성실하고 반복적인 과정이 결국 나를 정의하게 된다.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 정체성을 구성하는 네 요소는 결국 청중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것이다. 강의실에 100명이 앉아 있어도 여기서 내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나와 교감하는 청중은 그보다 훨씬 작은 규모일 것이다. 제품 구매자가 수십 명이라고 해도 그 모두가 청중은 아니다. 물론 오가닉 미디어 세상에서 청중이란 특정 직업과 브랜드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인생의 스토리를 쓰고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청중이 있다. 지금 여러분의 청중은 누구인가?

<갈림 길>


  1. Ray Daly, "Laws of Media," Laws of Media Probes, http://www.lawsofmedia.com/lawsofmedia.html, [Accessed on Oct 1, 2013].
  2. 김태현, "페이스북에서 내 컨텐츠를 더 많이 보게하는 방법," 버섯돌이의 소셜웹인사이트, May 13, 2013, http://mushman.co.kr/2691949, [Accessed on Oct 1, 2013].
  3. Erving Goffman, Interaction Ritual: Essays in Face-to-Face Behavior, Pantheon, 1982.
  4. Michael S. Bernstein et al., "Quantifying the Invisible Audience in Social Networks," Proceedings of the SIGCHI, 2013.
  5. Alice E. Marwick and Danah Boyd, "I Tweet Honestly, I Tweet Passionately: Twitter Users, Context Collapse, and the Imagined Audience," New Media & Society, Jul 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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