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연결이 지배하는 미디어 세상의 미래

Epilogue: The Future of Organic Media World

나는 막연히 미디어를 공부하고 싶다고 떠난 유학길에서 인터넷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보낸 10년은 내 인생을 크게 바꿔놓았다. 모든 사고의 시작은 ‘답’이 아니라 ‘문제’를 찾는 데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사회학에서 시작한 커뮤니케이션 공부가 인터넷과 네트워크 연구로 연결되었다. 그 후 텔레콤, 웹서비스, 벤처 등에서 10년여 간의 피 터지는 체험이 이어졌다. 이것은 하나의 스토리가 되어 돌아왔다. 오가닉 미디어는 20여 년간의 여행의 기록이자 그동안 만난 수많은 단서들을 퍼즐로 연결한 보고서다.

우리 자신이 오가닉 미디어다

인터넷이 출현하고 많은 디바이스와 서비스들이 우리의 일상을 파고들자 세상은 온통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실리콘밸리 벤처들의 시가총액이 하루아침에 수조에 이르기도 했고, 공짜 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망하는 기업들이 생겨났다. 이제 물질이 아니라 데이터가 자원이 된다고도 하고, 비트코인 같은 가상 화폐가 수백 년 이어져온 통화 체계를 바꿀지도 모른다고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모든 문제는 우리 스스로 미디어가 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가 만드는 미디어가(우리 스스로가) 서로 연결되고 창발하고 진화하는 과정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세상의 질서는 우리가 매개체가 되고 미디어가 되고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생산된다. 바로 오가닉 미디어 현상이다. 우리가 휴대한 수많은 단말기들이 우리 삶을 바꾸었고, 우리가 매 순간 공유하는 한 줄짜리 일기가, 사소한 검색 하나가 시장을 뒤집고 사회관계를 바꾸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도처에서 일어나는 시끄러운 변화들이 사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들, 그것에 길들여진 아늑한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이 시끄러운 변화를 좀처럼 알아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니,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1. ‘내’가 오가닉 미디어가 될 때

오가닉 미디어에서는 더 이상 물리적 컨테이너(콘텐츠를 담고 있는 용기)가 미디어를 결정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오가닉 미디어는 오직 규칙과 참여를 통해서만 작동한다.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는 사용자의 활동과 요구에 따라 재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형태 변이를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쓰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남았다. 서비스 규칙(사용자 인터페이스, 서비스 기능 등)은 대부분 단순하지만 우리가 규칙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응용하는 과정에서 창발이 일어난다. 서비스들은 그 결과에 반응하며 진화할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참여가 없는 미디어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소셜 네트워크가 없는 소셜 미디어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는 언어는 도태되듯이 사용자 없이 오가닉 미디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디어의 참여자인 동시에 매개자이며 미디어 자체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경험한 ‘안녕들 하십니까’ 현상은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우리 스스로 미디어가 되는 현상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이 현상의 주인공은 대자보도 SNS도, 신문도 방송도, 여당도 야당도 아니었다. 그 주인공은 우리 자신이었으며, 우리는 항상 연결된 잠재적 미디어였다. 우리는 낱낱이 떨어져 있는 개인이지만 우리의 활동은 동시다발적이며 이야기는 속도감 있게 상호 전이될 수 있다. 도처에 흩어져 있는 만큼 미디어의 규모도 커진다. 더 이상 한 지점에 모인 숫자가 미디어의 영향력을 산정하는 기준이 아니다.

앞으로 미디어는 우리 모두가 참여하는 네트워크로 정의될 것이다. 신문, 방송, 블로그 등의 메시지 전달 도구는 더 이상 개별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나’의 활동이 만드는 네트워크 지형 안에서 모든 메시지 전달 도구는 매개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앞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팔로워가 많은 사람도, 방송사도 언론사도 아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내가 주인공이며 내가 바로 미디어 자체이기 때문이다.

2. 시장과 비즈니스의 새로운 질서

나 스스로가 오가닉 미디어가 되는 현상은 미디어 영역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산업 영역은 병렬적으로 존재해왔다. 수십 년 동안 비즈니스의 기준이 되어온 가치 사슬이 그것을 입증한다. 제조업은 콘텐츠 산업과는 다르다. 유통업과 지식 산업도 엄연히 다른 것이었다. 이들의 경계가 명확하고 역할이 분리되어 있었으므로 가치 사슬이라는 선형적 구조도 가능했다. 이른바 삼성과 애플,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의 시장이 달라 보였다.

그러나 연결된 세상에서 단절된 방식의 사고는 자신을 가두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상은 진화하는 네트워크가 되었고 경쟁 구도 역시 바뀌었다. 단말기 제조사가 통신사를, 통신사가 콘텐츠 제공자를 통제할 수 없게 되었고, 비즈니스 구도는 선형적 가치 사슬에서 서로가 서로의 노드이자 매개자가 되는 네트워크 구조로 변화했다.

물론 사업자와 소비자 관계도 바뀌었다. 소비자는 이미 제품의 판매자, 매개자, 마케터가 되었다. 그래서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 사업자의 역할은 제품을 공급하고 수요를 창출하여 수익을 내는 것이 아니다. 사업자는 사용자들이 더 친해지고 더 편리하게 구매하고 더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통신원이고 매개자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미디어가 됨에 따라 발생하는 당연한 관계다. 그래서 시장이 선형적이지 않고 네트워크로 진화한다면 조직도 유기적인 형태 변이가 가능하도록 진화해야 한다. 이에 따라 리더의 역할(관리자가 아니라 네트워크의 다리가 되는 것)도, 구성원의 역할(노드)도, 소통 방식(보고와 지시가 아닌 투명성)도 바뀔 수밖에 없다.

3. 연결이 만드는 빅데이터 세상

쇤버거가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에서 지적한 것은 타당했다. 그는 “빅 데이터의 도움으로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사건의 연속으로 보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연적 현상 혹은 사회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들 말이다. 그 대신에 우리는 세상이 본질적으로 정보로 구성된 우주임을 보게 될 것이다”[1]라고 말한 바 있다.

요즘은 빅 데이터라는 단어가 모든 기업의 당면 과제가 되었다. 고객의 요구를 파악하는 방법,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 민심을 읽는 과학적인 방법은 다양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답답함이 가시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갑자기 데이터로 이루어진 세상을 살게 된 것일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휴대폰으로, PC로, 테블릿으로, 수많은 단말기로 항상 연결된 상태에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접하는 모든 상품과 콘텐츠, 경험이 연결되어 있다. 수십억 인구가 하나같이 오가닉 미디어가 되어 매 순간을 기록하고 매개한 결과는 세상의 새로운 지도로 나타났다. 데이터로 이루어진 세상은 우리가 만드는 세상이다.

예전에는 있는 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했고 개인의 창작 행위를 통해 콘텐츠를 생산했다. 그러나 사용자의 모든 행위가 기록으로 남고 모든 것이 결국 잠재적 ‘연결’ 상태에 있게 되면서 세상의 자원은 바뀌게 되었다. 제한된 재료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아내면 낼수록(빅 데이터에서는 이것을 상관관계(correlation)를 기반으로 하는 분석이라고 말한다) 무한대로 확장되게 되었다. 미디어로서의 우리 활동이 세상의 중심이 되면서 우리가 생산하는 데이터가 자원이 되고 재화의 가치를 바꾸게 된 것이다.

4. 교육의 위기와 연결의 가치

오가닉 미디어 현상이 인터넷 기반의 산업 영역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게는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조카가 있다. 영재학교를 다니는 이 똘똘한 학생은 뜻밖에도 고민에 빠져 있다. 공부는 1등인데 어떤 학과를 선택해야 할지, 본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앞으로 ‘잘나갈’ 분야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국어, 영어, 수학, 과학 등 교과목 중심의 교육은 세상을 단적이고 단절된 방식으로 인지하게 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변호사, 의사, 공무원, 마케터 등의 직업 카탈로그가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었다. 세상은 이미 시끄럽게 변하고 있는데 세상을 인지하는 방법은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직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마케터라고 해서 다 같은 마케터가 아니다. 마케터의 숫자만큼 다양한 마케터가 존재할 것이고, 그 이름도 우리들 각자가 부여할 것이다. 이제는 제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제품과 고객을 연결하면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마케터다. 무엇과 무엇을 연결하여 어떤 가치를 어떻게 제공할 것이냐는 선택은 모두 다를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정해진 직업의 틀 안에서 찾을 수 없다. 이것은 바로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세상, 항상 연결된 미디어인 우리 자신이 진화시키는 네트워크의 작동 원리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세상이 얼마나 빨리, 어떤 방향으로 변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니 위기감은 점점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앞으로 대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방향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곳이 아니라 ‘연결’을 도와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지식과 관점과 사람, 기회를 매개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어야 한다.

앞으로 학교는 학생들이 스스로 매개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기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곳이 될 것이다. 지식은 네트워크화되고 있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연결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 바로 그것이 오가닉 미디어 시대다. 학생들의 참여가 없는 수업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연결이 만드는 창발의 경험을 제공하지 못하는 대학은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역이 같은 맥락 속에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는 세상, 내가 미디어가 되는 세상, 미디어가 네트워크로 진화하는 세상에서 오가닉 미디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의 모든 변화는 두려운 미래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숙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움직이는 주인이 되었지만 여기는 도착점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프랑스 유학 시절 리옹의 수도원에 머문 적이 있다. 수도사들이 묵언 수행을 하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답답하기도 하고 우습기까지 했다. 함께 간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키득키득 신음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생각은 고요해지고 행동은 차분해졌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은 타인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경험이었다.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어도 그랬다. 그 대신 내 안으로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헝클어진 세상과 머릿속에 희뿌연 앙금이 가라앉고, 순간 머리가 르 코르뷔지에[2]의 빛처럼 반짝였다.

요즘은 전원을 끄는 것이 묵언이다. 아무리 침묵하려고 해도 내가 소지한 미디어들의 전원이 켜져 있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실시간 대화가 아니어도 소통은 계속된다. 지인들의 소식이 실시간으로 지금 내 메일함에 쌓이고 있고, 클릭 한 번에 수많은 미디어가 반응을 한다. 사실은 전원을 꺼둔다고 해도 소통이 단절되는 것은 아니다. 잠시 미루어질 뿐이다. 연결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오가닉 미디어와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하나가 되었다.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는 평생 미디어의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고, 항상 매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우리의 모든 행위는 항상 공유되며, 휴대폰을 잠시 끄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사람을 연결하고 시장을 움직이지만 내 활동의 기록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더 많은 흔적을 남기고 더 드러낼수록 더 안전하고 편리하고 즐거운 삶을 약속받는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어떻게 나의 주인이 될 것인가?

우리에게서 시작된 문제는 결국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우리가 세상의 주인이자 오가닉 미디어 자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새롭게 주어진 문제이며,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오가닉 미디어 시대에 대처하는 방법은 ‘체득’뿐이다. 그 과정에서 만나는 많은 인연이 그 답을 함께 찾아갈 것이다. 그 설레는 여행에서 나도 여러분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책을 엮기 위해 오가닉미디어랩의 블로그를 통해 많은 독자들을 미리 만났다. 내가 누구에게 글을 쓰고 있는지 알게 해주었고, 생각을 전달하는 방법도, 놓치고 있는 부분도, 남은 과제도 알려 주었다. 독자들 한 분 한 분이 큰 스승이다. 글을 읽어주시고 가르침을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다음 길>


  1. Viktor Mayer-Schonberger and Kenneth Cukier, 빅 데이터가 만드는 세상(Big Data: A Revolution That Will Transform How We Live, Work, and Think), 21세기 북스, May  16, 2013(원서출판: 2013), 179쪽
  2.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본명 Charle-Edouard Jeanneret, 1887~1965)는 프랑스의 유명한 건축가다. 리옹의 라뚜렛(La Tourette) 수도원은 여러 면면이 분할된 공간과 빛의 만남이 신비로울 정도로 조화로움을 이룬다. 다양한 공간과 각도에서 만나는 빛은 그 자체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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